Hyoseok Kim.

내가 되는 꿈을 읽고

내가 여러명이라면?

태희가 과거의 나/ 미래의 나와 편지로 조우했듯이
여러 나이대의 미래의 나, 과거의 나를 상상해보게 된다.
과거의 나는 지금의 나 처럼 이렇게 살 줄 알았을까? 지금의 삶은 학생시절의 나로서는 정말 생각도 못한 여러 일들을 겪어낸 삶이다. 정말 미래는 알 수가 없다.
자연스레 요즘하는 고민들을 이책에 날려보내게 되었다.
과거에는 그 때마다 집중하며 열심히 쫓던 목표들이있었다. 자의든 타의든 뭐든 하고싶은게 있었는데최근 어느순간 하고싶은게 없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스스로 의미부여를 하지 못하고 삶이 참 지루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언젠가 죽고 계속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생각에 허무감이 찾아온다.

이럴 때 미래의 나가 있다고 생각하니 좀 위안이 되는것 같다.
내가 지금의 과거의 나를 생각해보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삶을 살고있듯이 미래의 나도 지금의 나를 생각해보면 아주 우습게 여기게 될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나는 무겁게 지쳐있으나 거기 나는 상심을 털어내고 웃고있구나.
이런 상상을 하면서 편안해진다.
꾸준히 나는 내가 되고있구나. 내가 되고있는 꿈을 꾸고있구나.

갈무리

  • 나는 내 시간을 사는데 거기 누가 들어오는 거야. 그런다고 내 시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해가 뜨고 진다고 시간이 가는 거겠나. 내가 알고 살아야 그게 시간이지. 네가 지금 부모를 원망할 수는 있어. 원망하는 그 시간은 어디 안가고 다 네 가야. 그런걸 많이 품고 살수록 병이 든다. 병이 별 게 아니야. 설신처럼 시간을 닥치는대로 잡아먹는게 다 병이지.

  • 유일한 나는 찰나의 찰나. 우주는 아주 넓고 신비로우므로 내가 유일하든 무수하든 상관없을 테고, 허무하긴 마찬가지다. 허무를 잊지 않으면 낙관할 수 있다. 현재에 집중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담대해진다. 괴팍한 불인이 혼자 지껄이도록 내버려두고 소설을 쓸 수 있다. 쓰다보면 견딜 수있다.

  • 사과를 생각해보자. 상한 사과는 상하기 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그럴 때 할머니는 상한 부분만 칼로 도려낸다. 때로는 덩어리째 베어 낸다. 상한 부분을 그냥 두면 사과가 통쨰로 물크러지니까. 상해 버린 내 자존심도 도려내든가 베어 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통째로 물크러질 테니까. 내 자존심은 도려낸만큼 줄어들었다.

  •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았다. 내가 살았다. 그런데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과거는 꿈이 아니다. 나의 미래는 나.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고 모르겠다는 말은 지겹다. 이런 편지를 왜 쓰고있는지도 모르겠고 모르겠다는 말은 정말 그만하자.